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차가타이 칸국 (문단 편집) === 후기 : 분열과 멸망 === 숙적인 카이두의 오고타이 칸국을 멸망시킨 이후, [[원나라]]나 [[일 칸국]]과 종종 겪은 분쟁을 빼면 대외적으로 큰 위협은 사라졌다. 하지만 내부적인 혼란은 격화되어, 두아 칸이 죽은 1307년부터 실권이 있는 마지막 칸인 카잔 칸이 죽은 1346년까지 39년간 13명의 칸[* 복위한 케벡 칸은 1명으로 취급]이 난립하는 혼란기를 겪었다. 또, 이 시기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이슬람]]으로의 개종이었다. 가장 먼저 개종한 것은 [[몽케 칸]] 때의 무바라크 샤였으나, 본격적인 이슬람화가 가속화된 것은 이 때로 탈리쿠(1308 ~ 1309), 타르마시린(1331 ~ 1334) 칸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특히 타르마시린은 이슬람 개종 후 알라 앗 딘(ala-ad-din)이라는 [[무슬림]] 식 이름으로 개명하기까지 했다. 1342년, 오고타이 계의 무슬림 칸 알리 술탄이 즉위했고, 그는 이교도들을 박해하면서 이슬람 포교에 앞장섰다. 알리 술탄은 금방 쫓겨났지만 이후의 칸들도 무슬림이었고, 차가타이 칸국은 완전히 이슬람화하였다. 이렇듯 14세기 초반 차가타이 칸국의 상황은 몽골의 현지화 과정에서 이슬람과 몽골 전통 [[텡그리 신앙]], 도시 정주민 문화와 유목민 문화 간의 갈등을 함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칸 가문의 내분과 얽혀 혼란한 상황을 나타내게 되었다. 1346년 카잔 칸이 카라운 부[* 카라운 부는 사실 몽골의 전통 부족은 아니고, [[훌라구]]의 중동 원정에 참여한 [[킵차크 칸국]] 출신 부대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일대에 정착한 뒤 부족화한 것이었다. 카라운 부 이외에 당시 차가타이 칸국의 주요 부족으로는 자라이르부, 바를라스부, 술더스부, 야사우리부, 두글라트부 등이 있었다.]의 [[아미르]] 카자간과 싸워 패하여 사망했고, 카자간은 다니슈멘디를 명목상의 칸으로 내세우고 실권을 차지했다. 1년 뒤인 1347년, 동쪽의 투글루크 티무르가 이에 반발하여 [[모굴리스탄 칸국]]을 세워 떨어져 나가면서 칸국이 분열되었다. 카라운 부의 지배는 카자간과 그 아들 압둘라 2대에 걸쳐 3명의 칸을 옹립하며 12년간 이어졌다. 1358년, 바를라스부의 하지 벡과 술더스부[* 술더스부는 사실 타이치우드 부족의 한 씨족이다.]의 부얀 술더스가 압둘라를 제거했고, 이후 2년간 칸이 없는 상태가 이어졌다. 1360년, 모굴리스탄 칸국의 투글루크 티무르가 쳐들어오자 부얀 술더스와 하지 벡은 도망쳐서 목숨을 보전했다. 1년 뒤, 투글루크 티무르가 다시 쳐들어와 카라운부의 아미르 후사인을 격파하고, 술더스부의 부얀 술더스와 자라이르부의 바야지트를 처형했으며, 하지 벡은 도망치다가 목숨을 잃었다. 투글루크 티무르는 아들 일리아스 호자에게 서 차가타이 칸국을 맡기고 본국으로 돌아갔으며, 1363년에 사망했다. 일리아스 호자는 카라운 부 후사인과 바를라스 부 [[티무르]]에게 쫓겨나 본국으로 돌아갔으며, 2년 뒤인 1365년 다시 쳐들어와서 승리를 거뒀으나 역병 때문에 후퇴한 뒤로 다시는 복귀하지 못했다. 협력 관계에 있던 카라운 부 후사인과 바를라스 부 티무르는 이후 대립하게 되었다. 1370년 티무르가 후사인을 격파하고 수르가트미쉬를 칸으로 옹립한 뒤 본인은 아미르를 칭하면서 차가타이 칸국의 실권을 꿰찼고, 이후 연전연승을 거두며 [[티무르 제국]]을 건설했다. 차가타이 칸의 계보는 수르가트미쉬의 아들 술탄 마흐무드가 1402년 죽은 이후 끊겼고, 차가타이 칸국은 명목상으로도 멸망해 티무르 제국에 흡수되었다.[* 약 30년 뒤인 1429년에 티무르의 손자인 울루그 벡이 [[모굴리스탄 칸국]]으로 쳐들어가면서, 사투크 칸이라는 명목상의 칸을 내세운 적이 있기는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